메아리 저널

SK가 이글루를 삼켜 버렸네~

이글루스와 SK 커뮤니케이션즈가 한 식구가 됩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올라 오는 300여개의 트랙백 절규들)

처음에 이거 듣고 토할 뻔 했다. 마치 고래송이 러시아 자장가마냥 무한히 울려 퍼지는 느낌. -,.- (물론 제목은 리듬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줄인 것이고 SK 커뮤니케이션즈에서 인수한 것임.)

옛날에는 싸이월드 서비스를 상당히 싫어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나는 싸이월드를 쓰지는 않지만 (아마 잘 뒤져 보면 내 미니홈피가 있긴 할텐데, 쓰지를 않아서 방치된 지 몇 년 되었을 거다) 싸이월드 서비스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줄어들고 대신 이런 류의 싸이월드 "확장"에는 더 우려를 갖게 되었다.

싸이월드는 그 자체로는 상당히 괜찮은 서비스이다. 개인의 인간 관계를 온라인으로 가져 와서 비슷한 형태로 구현하고 자신의 것(미니홈피 등)을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용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해서 그걸로 사업 모델 만들고... 이 과정을 국내에서 상당히 초기 단계에 잘 밟아서 지금 같이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들어 낸 것이 싸이월드의 장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아무도 토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사용자가 자기 미니홈피를 꾸미면서 돈을 쓰게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냐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것으로 가는데, 사실 이렇게 따지면 모든 상행위에 대해서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좀 무리가 있긴 하다. 예를 들어서 백화점에서는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애쓰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익을 위해 그 고객들을 감시하고 심리적으로 조종하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싸이월드 서비스는 개인적으로는 맘에 들지는 않지만 백화점보다야 정직하지 않겠는가...라고 본다. 싸이월드가 비판받는 다른 이유로 서비스가 (엔지니어 입장으로 볼 때) 너무 허술하다-_-는 것이 있는데 이건 다른 얘기니까 제끼기로 하자.

근데 여기까진 좋은데, 이 상황에서 이글루스가 SK 커뮤니케이션즈에 넘어 갔다. SK 쪽의 의도는 아무래도 "사용자의 컨텐츠를 가지고 먹고 사는 서비스인데, 싸이월드는 개인적인 면에 치중해서 그런 게 부족하니 좋은 컨텐츠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인 이글루스가 같이 연동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대충 이런 요지의 글이 보도 자료에서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이걸 그대로 해석하게 되면, 미니홈피는 개인적인 공간이고 블로그는 거기에 딸린(!) 1인 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1인 미디어를 강조하는 데에는 중요한 약점이 있는데,

  • 일단 현실적으로 1인 미디어가 되려면 그만한 영향력이 있어야 하지만, 블로그보다는 차라리 네이버 붐업 같은 사이트의 영향력이 더 클 것 같다. 유명한 블로거라고 해도 그걸 "미디어" 수준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게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 이글루스의 또 다른 특징은 유난히 특정 분야에 관련된 사람이 꽤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누가 오타쿠 어쩌구 저쩌구 한 것도 그 중 하나고) 이걸 거꾸로 해석하면, 이글루스를 쓰는 이유는 자기랑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특징 때문에 이글루스 가든과 같은 서비스가 탄생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블로그를 1인 미디어로만 생각한다면 이런 효과를 전혀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만약 저기 나온 것만 토대로 SK 측이 이글루스를 인수한 뒤의 일을 생각해 본다면, 필연적으로 이글루스가 싸이월드에 연동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든 문제들 때문에 블로그를 싸이월드에 보기 좋게 연동하는 서비스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이미 싸이월드 형식에 익숙한 사용자와, 이글루스에 익숙한 사용자가 조화롭게 섞이기 힘든 것이다. 차라리 그 동안에 싸이월드에 짜증 난 이글루스 사용자가 먼저 빠져 나갈 것이다. 좋지 않은 결말이 되겠다. :(

물론 이건 SK 측이 1인 미디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걸 진짜로 부각시킬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고 한국 언론의 특성상 블로그만 나오면 앞에 1인 미디어를 붙이는 것 때문에 와전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여러 언론에서 똑같은 표현이 나오고 있으니, SK 측에서 그런 식으로 보도 자료를 뿌렸다고 보는 것도 신빙성 있을 것 같다.) 아마 SK 쪽도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할 것이고 -- 특히 기존 사용자들의 반발 -- 어느 시점까지는 이글루스 서비스를 제대로 운영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문제를 보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장담하기 힘들다.

한편으로 나는 이글루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존경(?)심 같은 걸 가지고 있다. "꾸미는" 것을 사업 모델로 삼아서 거기에 집중하면 미니홈피나 네이버 블로그 같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스킨 따위는 맘대로 고치게 냅두고 과감히 블로그를 사용하는 "편의성"을 사업 모델로 삼아서 사용자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게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지금까지 잘 끌어 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존경할 만한 가치는 있다. 그래서 SK의 이글루스 인수 발표가 더더욱 아쉬운 것이다. 앞으로 이글루스가 초심을 잃지 않고 잘 운영될 지, 아닐 지는 두고 봐야 겠다.

이 글은 본래 http://tokigun.net/blog/entry.php?blogid=64에 썼던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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